송강가사에 나타난 우리말의 아름다움

이상 보(국민대 명예교수)

1. 송강가사란 무엇인가?

송강가사란 송강 정철(1536∼1593)이 지은 시조와 가사들을 후손이 모아 엮은 시가집을 말한다.
이는 그의 문집인 <송강집>과는 따로 펴낸 것인데 목판본과 필사본으로 크게 나뉜다.
( 1 ) 목판본으로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으로는 이른바 관북본(이선본)과 성주본과 관서본 의 3 가지가 있다.
① 관북본은 송가의 3세손인 정호(鄭澔: 1648-1736)가 평양감사로 있을 때에 펴낸 것인데 우암 송시열의 문인인 정호가 동문 선배인 서포 김만중과 지호 이선(李選)이 애송하던 장가 3편(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과 이선의 아버지인 이후원이 <경민편언해>의 부록으로 펴낸 훈민가 16수를 줄기로 삼고, 그때에 전송되던 가사 성산별곡과 장진주사, 주문답 3수 등의 시조를 합쳐 펴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가사 5편(장진주사 포함)과 시조 51수가 실려 있는데 성주본에 없는 3수가 이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이선의 발문이 있으므로 달리 이선본이라고도 한다.

② 성주본은 송강의 6세손인 정관하(鄭觀河: 1685-1757)가 성주목사로 있을 때인 영조 23년(1747)에 경북 성주에서 펴낸 것이다. 상권에는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장진주사의 차례로 실었는데 관서본에 있는 김상헌·권필·이수광·이안눌 등의 한시와 평설은 넣지 않았다. 그리고 하권에는 시조 79수(훈민가 16수와 그밖의 63수)가 실려 있으니 관서본보다 28수나 더 모아놓았다.

③ 관서본은 송강의 8세손인 정보(鄭寶;1701∼1776)가 영조 44(1768)년에 평남 평양에서 펴낸 것이다. 그 내용의 엮음새는 관북본과 같고, 성주본과는 아주 다른데 정보의 발문이 있다. 송강가사의 판본

 송강가사의 판본
 

판본명

펴낸이

편낸 때

장수

송강과의 관계

간직한 곳

관북본

정호

숙종30(1704)경

26장

송강의 3세손

서울대 도서관

성주본

정관하

영조23(1747)

44장

송강의 6세손

이병주 박사

관서본

정보

영조44(1768)

23장

송강의 8세손

국립중앙도서관

( 2 ) 필사본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2 가지가 있다.

① 문청공유사(文淸公遺詞)

송강의 12세손인 정운오(鄭雲五;1846∼1867)가 엮어 필사한 것이다. 이 책은 뒤에 고종 20년(1894)경에 필사한 '송강별집추록유사'의 저본이 되었으며, 목판본에 누락된 송강의 시조를 집안에서 전해온 유고에 의해 첨록한 것이다.

② 송강별집추록유사(송강별집추록유사(松江別集追錄遺詞)

송강의 후손이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서 엮은 필사본인데 1958년에 경북대학교에서 <송강가사(송강별집추록유사)>란 책명으로 영인본을 펴냈다.

1권에는 지봉의 제사, 관동별곡과 청음·서포·청호의 번사, 청음·석주의 한시, 동춘의 찬사, 사미인곡·속미인곡, 서포와 북헌의 제사, 홍명의 소지, 배와의 번사, 북헌의 찬사, 동악과 학고의 한시 등이 실려 있다.

2권에는 성산별곡, 잠수와 석은의 번사, 문곡과 퇴어의 한시, 장진주사와 북헌의 번사, 석주·산수·삼환의 한시, 주문답과 석은의 번사, 훈민가와 우재의 제사, 정견의 계사, 석은의 번사, 단가잡편과 해장의 번사, 습유로서 성은가·속전지연가와 석주의 번사, 서하당벽오가와 번곡, 단가삼첩, 부록으로 6세손 도(棹)의 번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 병소서 등이 실려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목판본들에 없는 많은 번사와 새로운 단가(시조)들이 덧붙여진 것이다.

2. 가사 4편에 나타난 우리말의 아름다움

<송강가사>에는 가사와 시조가 실려 있으나 여기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장진주사도 사설시조이므로 시조들과 함께 할애하고, 4편의 가사만을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송강의 가사는 그보다 앞서 가사를 지은 이들의 영향을 받은 바가 컸음을 알아야 한다. 그의 성산별곡은 면앙 송순의 '면앙정가'에서, 관동별곡은 기봉 백광홍의 '관서별곡'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매계 조위의 '만분가'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선배들의 작품을 모방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문장표현의 기술적인 면에서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려 씀으로서 그들을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여기서는 관북본(이선본)을 자료로 다루고, 그때의 말결은 살리되 옛맞춤법(아래아와 겹홀소리 쓰기따위)을 요새 맞춤법으로 고쳐서 살피고자 한다.

■ 성산별곡

적은덧 올라 앉아/ 나는 듯 드는 양이/ 뉘라서 베어내어/ 잇는 듯 펼치는 듯/헌사토 헌사할사/ 듣거니 보거니 일마다 선간(仙間)이라/ 곧 없도 아니하다/외씨를 삐어 두고/ 매거니 돋우거니/ 빗김에 닳워내니/ 뵈어 신고/ 흩던지니/어디로서 오돗던고/ 풋잠을 얼풋 깨니/ 물 위에 떠 있고야/ 굽으락 빗기락 보는 것이 고기로다/ 낮인들 그러할까/ 짝 맞은 늙은 솔란 조대(釣臺)에 세워두고/그 아래 배를 띄워 갈대로 던져 두니/ 어위겨워/ 모두 어찌 과하는고/물결이 채 잔 적에/ 하늘에 돋은 달이/ 손 위에 걸렸거든/ 잡다가 빠진 줄이/적선(謫仙)이 헌사할사/ 어찌한 시운(時運)이 일락배락 하였는고/ 모를 일도 하거니와 애鑯음도 그지없다/ 세사(世事)는 구름이라 머흐도 머흘시고/ 엊그제 빚은 술이 어도록 익었나니/ 잡거니 밀거니 싫카장 기우리니/ 마음에 맺힌 시름 적으나 하리나다/ 손 있어 주인(主人)다려 이르되 그대 讅가 하노라/

위에 들어놓은 말들은 얼마간의 한자말을 빼고는 모두 지금 살려 써도 좋을 토박이말이다.

그러니 성산별곡의 바탕이 되는 말가락도 듣는 이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지날손(나그네)", "하건마는(많건마는)", "가지록(갈수록) 나이 여겨(낫게 생각하여)", "적은덧(잠깐)", "나는 듯(나가는 것같다가) 드는 양이(들어오는 모습이)", "뉘라서(누구가)", "삐어(심어,뿌려)", "뵈어(재촉하여)", "흩던지니(흩어지게 내던지니, 멋을 부리는 말투)", "어디로서(어디에서, 어디로 해서) 오돗던고(왔었던가)", "솔란(소나무는)", "어위겨워(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과하는고(기리는가, 칭찬하는가)", "헌사할사(야단스럽구나)", "일락배락(흥했다 망했다)", "하거니와(많거니와)", "머흐도 머흘시고(험하기도 험하구나)", "어도록(얼마나)", "싫카장(싫것)", "적으나 하리나다(조금이나마 낫는다)", "讅가 하노라(그 사람인가 생각한다)" 들은 송강가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말씨들이다. 그러니 괄호 안의 뜻과 비슷한 말을 이렇듯 가려서 쓰고 있는 데서 송강의 문학정신이 빛나는 것이다.

■ 관동별곡

죽림에 누웠더니/ 가디록 망극하다/ 연추문 들이달아/ 어디메오/ 어드러로 든단 말고/ 하도 할사/ 계오 새와/ 올라하니/ 하마면 뵈리로다/ 아는다 모르는다/ 옛 이름이 마초아 같을시고/ 고쳐 아니 볼 게이고/ 섞돌며 뿜는 소리/ 잦았으니/ 들을 제는 우레러니 보니는 눈이로다/ 첫잠을 깨돗던지/ 반겨서 넘노는 듯/ 고쳐 올라 앉은말이/ 여기야 다 뵈나다/ 어와 조화옹이 헌사토 헌사할사/ 날거든 뛰지 마나 섰거든 솟지 마나/ 부용을 꽂았는 듯 백옥을 묶었는 듯 동명을 박차는 듯 북극을 괴왔는 듯/ 높을시고/ 외로올사/ 하늘에 추밀어 무슨 일을 사뢰리라/ 어와 너여이고 너 같은 이 또 있는가/ 헤어하니/ 맑거든 좋지 마나 좋거든 맑지 마나 저 기운 흩어내어 인걸을 만들고자/ 그지없고/ 어느야 높돗던고/ 어와 저 지위를 어이하면 알 거이고/ 오르지 못하거니 내려감이 고이 할까/ 그 앞에 너러바위/ 굽이굽이 서려 있어/ 이온 풀을 다 살려 내어스라/ 실같이 풀쳐 있어 베같이 걸었으니/ 내 봄에는 여럿이라/ 여기도곤 낫단 말 못하려니/ 매양 보랴/ 가자스라/ 섞부니/ 네 벗인 줄 어찌 아는/ 몇 곳에 앉돗던고/ 밤중만 일어하니/ 상운이 짚이는동 육룡이 바퇴는동/ 바다에 떠날 제는 만국이 일위더니 천중에 치뜨니 호발을 혜리로다 아마도 열구름 근쳐에 머물세라/ 므니밟아/ 싫카장 펴졌으니 물결도 자도 잘사 모래를 혜리로다/ 이도곤 갖은 데 또 어데 있단 말고/ 헌사타 하리로다/ 못싫미니/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 노한 고래 뉘라서 놀래관대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지고/ 뵈는 듯 숨는고야/ 고초 앉아 바라보니/ 남대되 다 뵈고저/ 풋잠을 얼풋 드니 꿈에 한 사람이 날다려 일온 말이 그대를 내 모르랴/ 어찌 그릇 읽어 두고/ 우리를 따르는다/ 적은덧 가지 마오/ 적이면 날리로다/ 나도 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르거니 가인들 어찌 알리/

위에서도 "죽림에 누웠더니"란 말은 시골 곧 자연 속에서 편안히 누워서 지낸다는 뜻이니 지은이가 벼슬살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 "가지록(날이 지나갈수록)", "들이달아(달려들어와)", "어디메오(어느곳인가)", "하도 할사(많기도 많구나)", "올라하니(오르니)", "하마면 뵈리로다(자칫하면 보이겠구나)", "아는다 모르는다(아는가 모르는가의 옛스러운 말)"들과 같이 쉽고도 정다운 말을 한자말과 올섞어 쓰고 있다. 이 관동별곡(선조 13년, 1580)은 이미 25년전(명종 10년, 1555)에 기봉 백광홍이 지은 관서별곡의 갖춤새를 좇아 지은 것이므로 그 나타낸 말씨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송강은 모방의 천재라서 문학적 솜씨(기교)와 글말의 감칠맛이 더 뛰어난 것이다.

■ 사미인곡

이 몸 삼기실 제 임을 좇아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젊어 있고 임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노여 없다. 평생에 원하오되 한데 예자 하였더니 늙거야 무슨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뫼셔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덧에 어찌하여 하계에 내려오니. 올 적에 빗은 머리 흩으런지 삼년일세. 연지분 있네마는 눌 위하여 고이할고. 마음에 맺힌 시름 첩첩이 쌓여 있어 짓느니 한숨이요 지나니 눈물이라/ / 시름도 그지없다/ 물 흐르듯 하는고야/ 가는 듯 고쳐 오니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도 하도 할사/ 황혼에 달이조차 벼맡에 비치니 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시실고/ 머흐도 머흘시고/ 뉘라서 찾아갈고/ 예거든 열어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하룻밤 서릿김에 기러기 울어 옐 제/ 임인가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사람은커니와 날새도 그쳐 있다/ 더욱 일러 무삼하리/ 톑가림도 하도 할사/ 자른 해 수이 지어 긴 밤을 곧초 앉아/ 꿈에나 임을 보려 턱 받고 빗겼으니/ 하루도 열 두 때 한달도 서른 날 적은덧 생각 마라 이 시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어 골수에 꿰쳤으니 편작이 열이오나 이 병을 어찌하리 어와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시어지어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쪽쪽 앉니다가 향 무친 날애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이야 날인 줄 모르셔도 내 임을 좇으려 하노라/

맨 첫 줄부터 다섯쨋 줄까지는 사미인곡의 첫머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하루도 열 두 때"부터 끝까지는 또한 사미인곡의 끝맺음 부분이다. 이렇듯 사미인곡은 처음부터 끝가지 우리말이 아름다운 비단결처럼 짜여져 있다. 이러한 솜씨는 속미인곡에서도 나타나니 다음과 같다.

■ 속미인곡

제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한저이고/ 해 다 져 저문 날에 눌을 보러 가시는고/ 어와 너여이고 이 내 사설 들어보오. 내 얼굴 이 거동이 임 괴암즉 할까마는 어떤지 날 보시고 네로다 여기실새 나도 임을 믿어 군뜻이 전혀 없어 이래야 교태야 어지러이 하돗던지 반기시는 낯빛이 예와 어찌 다르신고. 누워 생각하고 일어 앉아 혜어하니 내 몸의 지은 죄 뫼같이 쌓였으니 하늘이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물하랴. 설워 풀쳐 혜니 조물의 탓이로다/ 글란 생각 마오 맺친 일이 있어이다. 임을 뫼셔 있어 임의 일을 내 알거니 물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날인고/ 어찌하여 지내시며/ 뉘라서 뫼셨는고/ 예와 같이 쇠시는가/ 기나 긴 밤에 잠은 어찌 자시는고. 임다이 소식을 아무려나 아자하니 오늘도 거의로다. 내일이나 사람 올까. 내 마음 둘 데 없다. 어드러로 가잤말고. 잡거니 밀거니 높은 뫼에 올라가니 구름은커니와 안개는 무슨 일고/ 차라리 물 가에 가 뱃길이나 보려 하니 바람이야 물결이야 어둥정 된저이고. 사공은 어데 가고 빈 배만 결렸는고 강천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보니 임다이 소식이 더욱 아득한저이고/ 오르며 내리며 헤뜨며 바장이니 적은덧 역진하여 풋잠을 잠깐 드니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임을 보니 옥같은 얼굴이 반이나마 늙었에라. 마음에 먹은 말씀 싫카장 걬자 하니 눔물이 바라 나니 말씀인들 어이하며 정인들 못다 하여 목이조차 메어하니 오전된 계성에 잠은 어찌 깨돗던고. 어와 허사로다. 이 임이 어데 간고. 결에 일어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어여쁜 그림재 날좇을 뿐이로다. 차라리 시어지어 낙월이나 되어 있어 임 계신 창 안에 번 듯이 비치리라. 각시님 달이야커니와 궂은 비나 되소서/

이 속미인곡도 앞의 사미인곡과 같이 머리부터 끝까지 거의 순우리말로 자신의 문학적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말의 가락이 미끄러워서 마치 흐르는 시냇물이 좔좔 소리를 내며 출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가?

아무튼 정철의 송강가사에 실린 가사와 시조들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그의 유저인 <송강집>에 실린 수많은 한시문들이 일정한 수준 높은 걸작들임도 사실이나 그보다도 그가 한문학 일변도의 당시 사회에서 우리말의 숨통을 트게 하고, 자신의 시적 정서를 토박이말로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말씨를 가려가며 썼다는 사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눈여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