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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자

4. 선진국들의 언어 순화 운동

 

 

① 프랑스의 언어 순화 운동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음악적이며, 명쾌하고 정확한 언어’라고 자랑한다. 아무리 어려운 사상이나 추상적인 관념이라도 프랑스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또 아무리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이라도 프랑스어가 묘사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세계의 언어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뽐내는 프랑스어는 17세기부터 프랑스 지식인들이 스스로 나서서 정화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말은 보석같이 아름다운 말이므로 잡티가 섞여서는 안 된다

 

17세기 초 프랑스어 정화 운동에 앞장섰던 시인 말레르보는 프랑스어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언어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섞여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어 속에 끼어들어 온 외래어나 사투리, 욕설이나 비속어를 솎아내서 프랑스어를 깨끗하게 하고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에도 품격과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프랑스의 귀족들과 작가 등 지식인들은 그런 말레르보의 뜻을 이어받아서 프랑스어 순화를 위해서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만들어서 프랑스어와 문학 작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는 1637년 이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왕립 기관으로 만들어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프랑스어 사전과 문법책을 만들도록 했다.

 

50년 동안 공들여서 프랑스어 사전 편찬

 

이 사전은 50년 동안 공들인 끝에 1684년에야 초판이 간행됐다. 그 사전의 정신은 모범적이고 교양 있는 프랑스인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을 실어서 프랑스어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프랑스어를 고상하고 아름답게 가꾼다는 것이었다.

 

이 사전은 계속 고치고 다듬어 1935년 제 8판이 발간됐고, 현재 제 9판의 편집이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어를 세련되고 아름답게 가꾸는 데는 당시의 살롱 문화도 큰 몫을 했다. 볼테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살롱에 출입하면서 고상하고 점잖은 태도와 세련된 말씨를 사용하면서 기품 있는 언행을 하는 것이 상류층의 새로운 기풍이 됐다.

 

사전 편찬의 중심 인물이었던 보즐리는 궁전이나 살롱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이 쓰는 말이나 관용구를 모아서 ‘ 프랑스어에 대한 주의 사항 ‘이라는 책을 썼는데, 당시 그 책은 프랑스어의 교본이됐고, 유명한 작가들도 그 책의 주장에 따라서 자기 작품을 고쳐 쓰기도 했다.

 

프랑스 지식인들의 그 같은 노력으로 대혁명 이후 의무 교육이 시행되면서 프랑스 전역에 표준화된 프랑스어 교육이 시행될 수 있었고, 상류층의 언어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용어도 표준어에 흡수됐다.

 

신문사, 방송국들도 언론 순화에 큰 몫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프랑스어 순화의 노력은 꾸준하게 지속되고 있다. 1937년에는 언어학자 브뤼노를 중심으로 ‘프랑스어 조사국’이 창설돼서 각 분야별로 불필요한 외래어 등을 솎아내고 저속한 표현 등을 걸러내면서 순화 운동을 하고 있다.

 

신문사나 방송국 등도 프랑스어를 다루는 고정난과 프로그램을 두고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고 거친 표현을 지적하는 등, 순화 활동에 한몫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975년 프랑스어 사용에 대한 법률을 제정, 언론 매체에서 영어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또 1984년에는 대통령 직속으로 프랑스어 사무총국이 만들어졌고, 2001년에는 ‘프랑스어와 프랑스의 언어들 총국’ 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 기구는 프랑스어 순화와 문맹 퇴치, 프랑스인들의 언어 능력 향상, 프랑스어의 다양화와 풍부화, 프랑스어의 국제적인 진흥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② 영국의 언어 순화 운동

 

영어는 14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의 야만의 수준에 머물렀던 언어다.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하면서 이후 150년 동안 영국의 궁정이나 법정, 학교, 의회에서 프랑스어가 영국의 공용어가 됐다. 윌리엄이 영어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모국어의 지위를 잃은 영어는 서민들과 하층민들의 언어로 전락해 존엄성을 잃게 됐고, 프랑스어도 많이 섞이게 됐다. 언어학자들은 그 시기의 영어를 침몰한 언어라고 부른다.

 

침몰한 언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일으켜세우다

 

영어는 그런 어둠의 시기를 지난 후 1362년 처음으로 법정에서 사용되기 시작해서 공식 언어로 모습을 드러냈다. 1363년에는 의회 개회사로 등장했다. 1399년 헨리 4세의 즉위 선언이 영어로 시행돼서 영어를 공식 모국어로 쓴 최초의 국왕이 됐다.

 

14세기에 영국의 제조업자와 무역상 등 중간 계급의 사람들이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런던의 사투리가 영국의 표준어로 등장했고,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유명한 대학들이 런던과 가까와서 대학에서도 런던 방언을 쓰게 됐다.

 

런던 영어는 1430년경 공문서 표준어로 쓰였고 그 시기부터 학자들과 문학 작가들이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영어에서 걸러내서 영어의 순수함을 다듬기 시작했다.

 

영어의 표준화와 올바른 표준말 쓰기 중심으로 순화 운동

 

18세기 들어 영국인들은 본격적으로 영어의 표준화와 올바른 모범을 세우기 시작했다. 1755년 유명한 존슨 영어사전이 출판됐다. 존슨은 개인의 힘으로 방대한 규모의 영어 사전을 출판, 영어의 표준화와 철자법 정리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언어학자 리우튼과 라우스 프리스틀리는 또 현대적인 영문법 책울 출판, 영어의 언어 순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오래된 영어 낱말을 찾아 일상 생활에서 쓸 수 있도록 되살리고 천박한 낱말은 솎아내서영어의 품격과 권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영국의 언어 순화 노력을 대표하는 업적은 옥스퍼드 사전이다. 이 사전은 1858년부터 수천 명의 학자들이 동원돼서 70년 동안 만들었다. 이 사전은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10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 철자와 의미 변천 과정을 밝히는 방법으로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영국의 자랑 옥스퍼드 영어 사전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영어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도록 만든 세계 언어학사에 빛나는 업적이다. 사전을 만드는 데 해외에서도 천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나서 수만 권의 문헌을 조사했고, 낱말마다 쓰임과 뜻을 풀이했다. 사전의 초판은 주요 표제어 120,165 단어, 총 15,487 페이지나 됐다. 1933년에 수정 증보판이 나왔고, 1976년에 추가 증보판이 간행됐다.

 

영국 언어 순화 운동의 특징은 표준어 발음의 권위를 높이고 국민 대다수가 표준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모든 분야의 지도층이 표준어 발음을 쓰고 방송에서도 표준어 발음을 쓴다. 영국에서는 방송이 표준어 발음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거나 장난으로 여긴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모든 영국인들을 일깨운 쉬운 영어 운동

 

1979년 크리시 메이어 여사가 시작한 쉬운 영어 운동은 영국의 언어 순화 운동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공문서에서 어려운 영어를 추방, 국민들에게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고 법률 용어와 은행, 보험회사, 병원 의약품의 어려운 용어를 쉬운 말로 바꿔서 많은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영국의 쉬운 영어 운동은 정부와 의회, 대학, 기업과 전문 기관들에 퍼져서 현재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모든 영국인들이 모든 분야에서 쉽게 소통하고 쉽게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인 비용과 부담을 크게 줄이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③ 독일의 언어 순화 운동

 

독일은 17세기까지 통일된 나라를 가지지 못했고 독일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언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민족적인 자존심이 강해서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나면서부터 독일어에서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솎아내는 운동을 벌였다.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나라가 여러 개의 영방 국가들로 쪼개진 상태에서도 독일인들은 독일어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나섰다.

 

민족 의식과 애국심으로 독알어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나서다

 

권위있는 학자들과 저명한 작가들은 그때부터 언어 협회를 만들어서 독일어 표준어를 만들고, 문학과 교양, 학습 부문에서 순수한 독일어 글자를 쓰자는 운동을 폈다. 독일 언어 정화 운동의 기틀이 된 그 시기의 언어 정화 운동은 모든 상스럽고 애매한 말글을 걸러내고, 문법에 어긋나는 말과 글을 정돈하고 외래어를 솎아내는 데 집중됐다.

 

17세기 이후 독일의 언어 정화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독일 해방 전쟁을 겪으면서 19세기 초 독일 국민들이 민족 의식과 애국심이 고취됐을 때다. 그 시기의 언어 순화 운동은 강렬한 애국심과 민족 의식으로, 외래어를 배격하고 독일어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데 모아졌다. 게르만어와 민중 방언 등 오래된 독일어를 찾아내고 다듬어 독일어의 낱말 수를 크게 늘리고 저속한 표현과 외래어를 솎아내서 독일어의 위상과 품격을 크게 드높였다.

 

대문호 괴테-독일어의 자존심을 일으키다

 

그 시기 독일어의 발전은 대문호 괴테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당시 유럽 상류층을 휩쓴 프랑스어와 새롭게 세계어로 등장한 영어에 비해서 시끄럽고 천박하다고 비웃음을 당했던 독일어는 ‘파우스트’ 등 세계적인 대서사시를 쓴 괴테로 인해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고귀한 언어라는 자부심을 독일인들에게 심어 주었다.

 

독일의 언어 순화 운동은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이후 전성기를 맞는다. 정부도 언어 정화 운동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 독일어 정화 운동을 펴고 외래어 배격 운동에 나섰다. 교사와 전문가, 공무원들이 일반 독일어 협회에 스스로 회원으로 참가해서 많은 외래어들을 독일어로 고치고 말과 글을 다듬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2차 대전 때까지 히틀러 정권은 독일의 언어 정화 운동을 정치에 이용, 국수주의적으로 외래어를 공격하는 등 독일어 발전에 큰 상처를 입혔다. 1949년에 설립된 독일어 협회는 히틀러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외래어의 적절한 사용과 수용을 연구하는 등 새로운 언어 순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④ 미국의 언어 순화 운동

 

미국의 언어 순화 운동은 쉬운 말 쓰기 운동이 돋보인다. 1940년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던 작가 스튜어트 체이스는 쉬운 언어 쓰기 운동을 벌여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키워나갔다. 체이스는 법률 용어부터 금융, 기술 등 전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쉬운 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자고 나서 각계각층의 호응을 얻었다.

 

정부와 민간 단체 모두 쉬운 언어 쓰기 운동에 나서

 

이 쉬운 언어 운동은 학교와 은행, 정부 기관 등 많은 곳으로 번져서 은행의 대출 서류와 보험 약관, 약의 이용법, 법률 서류 등 많은 분야에서 쉬운 언어로 개혁이 이뤄졌다.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쉬운 말로 쓰인 연방 공보’를 발표, 정부가 공식적으로 쉬운 언어 운동에 앞장섰다.

 

모든 사람들에게 정부와 민간의 모든 문서를 쉽고 정확하게 알도록 하자

 

1978년에는 카터 대통령이 행정 명령으로 모든 규정을 쉬운 언어로 쓰도록 정했다. 쉬운 언어 운동은 1993년 국제 협의회가 만들어져서 캐나다 등 다른 영어권 국가들도 동참했다. 1998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모든 정부 문서를 쉬운 글로 쓸 것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냈고, 앨 고어 부통령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정부 기구에 쉬운 언어 훈련을 제공하는 ‘쉬운 언어 행동 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스스로 ‘쉬운 언어 정보 행동 네크워크’ 를 만들어서 연방 정부가 만드는 법률과 규칙, 공보 등 모든 내용을 쉬운 글로 쓰도록 하고 정확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호응해서 미국의 민간 단체들은 ‘쉬운 언어 센터’라는 비영리 기관을 만들어서 공공 부문과 함께 기업, 개인 생활 등 사적 영역에서 모두 쉬운 영어를 쓰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쉬운 글 쓰기 법안을 공포했다. 그 법안은 연방 정부가 새로 만드는 모든 문서와 개정되는 모든 문서는 쉬운 글로 써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정부의 그런 활동들이 연방 기관의 효율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언론 기관들도 스스로 쉬운 말과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결같이 자기 나라 말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선진국들-남의 나라 글을 떠받드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선진국들의 언어 순화 운동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자기 나라 말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 욕설이나 비속어를 솎아내고 외래어가 덜 섞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들 모두 모국의 말글에 자부심을 가지고 말과 글의 품격을 높이고 표준어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힘을 쏟고 있다. 또한 나라마다 대중의 소통을 위해서 좀더 쉬운 말글을 쓰도록 여러 가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나라처럼 남의 나라 글인 한자를 숭상하고 자기 나라 글인 한글을 천대하고 교과서에서 본디 우리말을 없애고 있는 일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선진국들의 언어 순화 운동들은 자기 나라 말글을 천시하고 남의 나라 글을 떠받드는 나라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