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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자

9.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열쇠 한글

 

 

전 세계 선진국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저마다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자기 나라 글자를 꾸준하게 갈고 닦아 왔다는 사실이다.

 

글자는 단순하게 읽고, 쓰고, 서로 소통하는 기능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의 깊이와 흐름을 이끌기에 그 나라 문화의 특징을 나타내 주고 삶의 모습과 품격을 드러내게 한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말과 글을 갈고, 닦고, 자기 나라 글자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 오고 있다. 글의 품격이 높아져야 나라의 품격이 높아지고 문화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 글을 갈고 닦은 선진국이 인류 문명을 이끌어왔다

 

이렇게 자기 나라 글을 갈고, 닦고, 품격을 높여 온 선진국 국민들은 수준 높은 시대 정신을 발휘하고, 이념을 만들어내고, 자기 나라 문명의 방향을 스스로 세우면서 인류 문명을 이끌어 왔다.

 

그러지 못한 나라들은 일류 국가들이 이끄는 문명의 방향을 뒤따르면서 스스로 이류 국가의 길을 걸어 왔다. 따라서 이류 국가들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지 못하고 일류 국가들을 모방하고 흉내내기에 익숙하고, 그들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이 뒤떨어진다.

 

일류 국가와 이류 국가는 삶의 질과 산업 생산 능력도 차이가 크다.

 

일류 국가들은 제 나라 글을 가꿔 오면서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키워 왔으므로 삶과 생산의 질도 스스로 결정, 판단하는 능력을 갖춰 왔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길러 왔으므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문화를 이뤄냈다. 그런 역량이 남보다 앞서 삶의 질을 높이고 산업 생산의 질적인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 온 것이다.

 

이류 국가는 모방 문화, 모방 경제

 

이류 국가들은 모방 문화, 모방 경제이기에 창의력이 부족하고, 산업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를 보이고, 문명을 이끄는 역량도 부족하다.

 

그렇듯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쓰는 것과 남의 나라 글을 빌려쓰는 데에서 일류 국가와 이류 국가의 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은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매우 깊고 넓으며, 사고의 유연성도 높다. 생각이 그대로 말과 글로 이어지고 또 글이 막힘없이 생각으로 이어지기에 생각의 높이와 깊이가 무한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얼마든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생각의 터전을 가지게 된다.

 

자기 나라 글을 써야 창의력과 상상력이 커진다

 

세계 언어학자들은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수없이 많은 기회에 그 말과 글을 썼던 기억이 생각에 녹아 있기에 글의 쓰임이 저절로 다양해지고, 표현의 범위가 크게 넓어지고 다채롭고 자유자재로 이뤄진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쓸수록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커지고, 창의력과 상상력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 글을 빌려쓰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상력과 창의력, 생각의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남의 글을 빌려쓰는 사람들은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막힘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글을 쓰면 생각의 높이와 깊이가 제한된다

 

생각을 자기 나라 글이 아닌 남의 글로 옮기게 되면 저절로 글이 나오지 못하고 머릿속에 외어 두었던 남의 글을 불러내서 써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돼 있다. 따라서 남의 글로 옮기는 일을 잘 하려면 무수하게 많은 남의 글 낱말들을 잘 외어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남의 글 낱말들을 잘 외어 두었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 글을 쓰는 것처럼 막힘 없이 쓸 수는 없는 것이며, 머릿속에서 생각이 우리 글로 옮겨지고 우리 글이 남의 글로 옮겨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남의 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글의 본뜻은 많이 달라지게 된다.

 

글은 자기 나라 말을 자기 나라 글로 쓸 때에는 수많은 경우와 느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뜻으로 자유자재로 쓰이게 된다. 그러나 남의 나라 글을 빌려쓸 때에는 그 시기의 형편에 따라서 글의 뜻이 일부만 옮겨져서 쓰이게 된다. 그것은 남의 글을 빌려쓸 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남의 글을 쓰면서 현실적으로 그 나라에서 쓰던 모든 뜻과 경우를 모두 옮겨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의 글살이는 살아 움직이는 생각의 날개를 꺾는다

 

남의 글은 또 외어서 쓸 수밖에 없으므로,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글의 일부 뜻만 고정시켜서 쓰게 된다. 글의 뜻과 쓰임이 명확하지 않으면 외우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쓰는 데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의 글을 빌려쓰는 사람의 한계인 것이다.

 

자기 나라 글을 쓰는 사람은 여러 가지 뜻으로 경우에 따라서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기에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글과 생각이 서로 넘나들게 돼 있다. 그러나 남의 글을 빌려쓰는 사람은 생각의 흐름이 곳곳에서 막히게 되고, 생각의 높이와 깊이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시집 기탄잘리 <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영어로 번역된 기탄잘리를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 시는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 모든 언어는 그 나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향기다. 그것들은 쉽게 다른 언어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 했다.

 

중국 글로 살아온 조선 시대 중국의 벽에 갇힌 사대주의 시대

 

우리 나라는 불행하게도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도 조선 시대 내내 한자로 글자 생활을 해 왔다. 조선 시대에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지만 중국의 글을 빌어쓰고 있었으므로 학문과 과학, 제도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항상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에 찌들어 살아왔다.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된 성리학도 종주국인 중국보다 더 좁은 생각의 틀에 가둬서 받아들이고 그것만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숭상했기에,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 나라 유생들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 많은 당쟁과 국가 분란을 일으키는 웃지 못할 비극을 낳았다.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여지는 한자 낱말의 뜻을 해석하는 문제를 두고 조선의 사대부들은 서로 우기고, 편을 가르고,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외골수에 빠진 조선의 사대부, 쇄국과 옹고집으로 나라 망쳐

 

중국은 양명학 등 새로운 학설을 받아들이고 서양의 새로운 과학 문명도 흡수했는데도, 우리 나라 유생들은 좁은 틀에 갇혀서 나라를 외로운 섬처럼 만들고 끝까지 쇄국 정책에 빠져서 나라를 망치고야 말았다. 그런 조선 지도층의 융통성 없는 사고방식은 한자를 빌어쓴 글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세기 말에 프랑스 신부가 한양의 관립 학교를 살펴보았더니 모두가 중국의 문자와 역사, 문학, 과학을 가르치고 정작 우리 나라의 글과 역사를 가르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남의 글을 빌어쓰게 되면 결국 정신도 뺏기고 자기 나라를 스스로 일으켜 세울 의지와 능력도 잃게 됨을 조선의 한자 문화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 한자말로 글살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말글 생활은 일제 강점기에 큰 변화를 겪는다. 나라를 뺏기면서 오히려 우리 글 한글의 중요성을 깨달은 많은 지식인과 애국 지사들이 문맹이었던 대중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글 쓰기 운동을 독립 운동의 하나로 삼았다.

 

그러나 들불처럼 일어난 한글 운동이었지만 무식한 대중들에게 글을 깨우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우리의 글자 생활에서 한글이 주인 노릇을 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물밀듯이 밀려들어온 일본식 한자말이 우리 나라 지식인들의 글자 생활의 주류를 이루게 됐고, 일제 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한글은 일본식 한자말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글이 만들어진 지 570년 동안 제대로 우리 글살이 못해 왔다

 

해방 후 수년 동안 많은 한글 학자들의 노력으로 잠시 우리 말글 생활에서 한글이 주인 노릇을 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끝내 일본식 한자말의 홍수에 묻혀버리고,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줄곧 일본식 한자를 중심으로 글자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한글이 만들어진지 570년이 지났지만 우리 나라 지식인들의 글자 생활은 조선 말까지는 중국의 한자로, 최근 백여 년은 일본식 한자를 중심으로 살아오고 있는 셈이다.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이 철저하게 중국의 한자로만 글자 생활을 해 왔다면 최근 백여 년 동안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글의 중요한 낱말은 거의 일본식 한자로 쓰고 나머지는 한글로 쓰는 글자 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식으로 생각하고 일본식 문화 환경에 익숙한 우리 지식인들

 

최근 백여 년 동안 일본식 한자말 중심으로 남의 글살이를 해 온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물건이 아닌 글자를 백여 년에 걸쳐서 일본으로부터 빌어다 썼으므로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식으로 생각하고 일본식 문화 환경 속에 사는 데 익숙해졌다. 정치, 경제, 과학, 법률, 문학, 의학,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 서적들의 핵심 내용들은 일본식 한자말로 채워져 있으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실질적인 지적 활동은 매일같이 사실상 일본식 한자말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서양의 책들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실제로는 일본식 한자말로 번역된 것을 읽게 된다. 따라서 해방 후 우리 나라는 일본뿐만 아니라 서구 여러 나라들로부터 다양하게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실제로는 거의 다 일본식 한자말을 통해 우리 지식으로 흡수해 온 것이다.

 

정치경제 사회문화 대부분의 틀이 일본식 틀로 돼 버렸다

 

이렇게 일본식 한자말의 굴레 속에서 백여 년을 살아오게 됐으므로, 우리 나라의 모든 법률 체계, 조세 제도, 정부 조직, 사법부와 재판의 형태, 학교의 교육 편제, 언론기관의 편제와 운영 체계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대부분의 틀이 일본식 문화의 틀로 이뤄지게 됐다.

 

입으로는 반일, 극일을 외치면서 실제 삶의 틀은 일본식 틀에 갇힌 절름발이 꼴이 돼 있는 것이다. 그렇듯 일본식 한자말 글살이로 일본식 틀에 갇히게 되면 우리 스스로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저절로 이류 국가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 시대 내내 중국식 한자 글살이로 중국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 또다시 일본의 틀에 갇혀서 살게 된다면 우리 나라의 앞날은 참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일본 문화 자체도 한자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 있으므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창조력이 약하다.

 

우리 글로 제대로 글공부를 시키지 않는 교육

 

글자 생활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므로, 그 밖에도 일본식 한자 글살이의 폐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분야는 교육 부문이다.

 

누구에게나 공부의 첫걸음은 어린이가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글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우리 나라도 네다섯 살 때부터 어린이들에게 첫째 글로 한글을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한글 교육은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 글로 더 깊이 생각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르는 공부를 시켜야 할 텐데, 그러지 않고 읽고 쓰는 기능적인 용도로만 가르치고 마는 것이다. 교사나 학부모들 모두 한글 공부는 깊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내내, 그리고 일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지식인들이 한글을 업신여겨 왔기에 교육자나 지식인, 학부모들 가릴 것 없이 한글을 깊이 공부해야 할 글자로 여기기 않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 많은 국어 시간에 한글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일본식 한자말을 익히거나 한자 낱말과 한자말로 이어진 글을 해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자기 나라 말과 글로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창의력과 상상력이 커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나라 학생들의 글자 교육은 일본식 한자나 중국 한자의 뜻을 주로 배우고, 익히고, 한글은 보조적인 기능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글자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떨어뜨리고, 공부를 외우기 위주로 하게 만든다. 자기 나라 말과 글을 깊이 공부하지 않으므로 호기심을 기르거나 스스로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키우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글공부는 한자 공부가 제대로 된 공부이고 한자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실증적으로 밝혀낸 것을 보면 자기 나라 글을 깊고,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고 공부하는 데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키워지는 것이지 남의 글을 외우는 공부로는 결코 창의력이 키워지지 않는다.

 

외워서 점수를 받는 교육으로 빗나간 우리 교육

 

그러나 우리 나라 공직자들과 사회 지도층 모두 외우는 공부만으로 좋은 대학에도 가고,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하고,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모두가 한자를 외우는 공부만이 제대로 된 학문이라는 생각의 틀에 사로잡혀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 교육은 학교 공부로부터 대학 수학능력시험까지 외워서 점수를 받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 있는 것이다.

 

외워서 점수를 받는 교육은 먼저 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킨다.

 

학교 교육은 인격과 성품을 기르고 창의력을 키우는 데에서 빛이 나는 법인데, 교육부에서부터 일선 학교들이 외우는 점수로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보다 학원을 비롯한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우는 점수 교육은 학교 교육을 비효율적인 짐으로 떨어뜨리고 학원 등 사교육을 훨씬 효율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교육의 근본을 타락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인성을 기르는 교육은 없고 점수 따기에만 매달려

 

전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시키면서 학생들의 인품과 덕성을 기르는 일은 소홀히 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은 시키지 않고 학원 등의 사교육 시장에서 불필요한 점수 따기 공부에만 열을 올리는 참담한 교육이 돼 버렸다.

 

외우는 점수 교육의 부작용은 또 모든 학생들을 외우는 점수로 등수를 매기기에 정작 창의력이 있거나 외우는 것 이외의 다른 분야에 적성과 능력이 있는 인재들을 모두 낙오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개인적으로도 크나큰 비극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국력이 낭비되고 사회적인 재앙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작문 실력이 가장 모자란 우리 나라 학생들

 

외우는 점수 교육의 또 하나의 폐단은 우리 나라 학생들에게 생각을 글로 옮기는 능력인 작문 실력이 뒤떨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학문의 열매는 작문 실력으로 거둬들인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길러지고 상상력도 커진다. 좋은 글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학문적인 성취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하도록 해 준다.

 

전 세계의 일류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작문 공부를 열심히 시키고 좋은 글을 잘 쓰는 능력을 으뜸으로 치고 있지만, 우리 나라는 작문의 첫 단추인 자기 나라 글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작문을 우습게 여기고 있기에 글쓰기가 가장 뒤떨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거의가 글짓기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의 글장난 정도로 여기고 있다. 한글날이나 다른 기념일에 백일장을 열어도 거의가 주부나 어린이들만 참여하고, 글짓기는 어린이들의 놀이 정도로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나라는 입으로는 노벨상을 떠들면서도 학문의 기본이 부실한 속빈 강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남의 글을 빌어쓰는 옹고집은 이념 갈등의 원인

 

남의 글을 빌어쓰는 글자 문화는 또 이념 갈등이 심한 나라를 만든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주자학을 만든 중국보다 속좁은 외고집과 글자 해석의 굴레에 빠져서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했던 것처럼, 현재의 지식인들도 이념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자기 나라 글을 자유롭게 쓰고, 공부하고, 깊이 익힌 사람들은 생각이 유연하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대응하는 사고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남의 글로 외우기 공부만 한 사람은 스스로 남의 글의 속박에 빠져서 남의 사상마저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섬기고 외골수에 빠져서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외우기 점수 교육으로 성장한 386 세대 등이 좌파의 이념 교육에 빠져서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보다도 더 완고하고 극단적인 이념의 속박에 얽매여 스스로 갇혀 있는 것도 남의 글을 빌어쓴 폐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 자기 나라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우리 나라는 이제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나아가고자 애쓰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 대부분의 바램은 세계에 자랑스러운 선진국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인 자기 나라 글쓰기 문화에서 너무나도 잘못된 길에 빠졌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문화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문화를 끌어올리는 기본적인 핵심은 국민들이 자기 나라 문화에 진정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진정한 긍지와 자부심의 출발은 자기 나라 말과 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국들이 그렇게 문화를 끌어올리고 선진국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의 글을 빌어써 온 우리 글 문화 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 적어

 

그런데 우리 나라는 가장 표현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말과 가장 과학적이고 쉽고 쓰기 편한 한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우리 말글을 무시하고 한자에 매달려서 살아 왔다. 따라서 우리 나라 사람 대부분은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매우 부족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농촌 생활에서 우리 조상들의 몸에 배서 수백년 동안 쓰여 왔던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일본식 한자말에 떠밀려서 해마다 숱하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일본식 한자말이나 영어 등 외래어가 들어서고 있다.

 

우리 글 한글을 업신여기고 천대해 오기를 너무 오래 해 온 탓에 이제는 한글로는 욕설이나 은어, 억지 줄임말 등을 만들어내는 천한 용도로 쓰이는 것이 일상화됐다. 국회의원이나 대학 교수 등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인들은 무슨 일이 있거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을 때에는 중국의 고전이나 어려운 한자 낱말을 들고 나와서 유식한 체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외국인에게 주는 중요한 선물을 중국 글자로 자주적인 기상이 없다

 

국가의 주요 인물이나 국제 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들이 외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선물할 때 중국의 고전이나 한자 낱말을 쓴 액자를 주면서 유식하고 고상한 척 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이 한자의 종주국임을 알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왜 구태여 중국의 글자를 귀한 선물로 주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한국이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도층 인사들이 우리 말과 글을 천대하면서 살아왔기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문화적인 자부심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는 그동안 선진국의 기술을 베끼고 그들의 경제 운영과 생산 관리 방법을 배워서 경제를 일으키고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문화의 힘과 창의력으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 우리 말과 글로 우리 문화 수준을 높이는 일

 

그러기 위해서 이제는 흉내내기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창의력으로 독자적인 우리 문화를 세워나가야 한다. 우리의 창의력으로 독자적인 우리의 문화를 세워나가는 지름길은 우리 말과 글로 넓고 깊게 다져 우리 문화의 터전을 가꿔나가는 일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우리 글로 깊고 넓게 다져서 도달한 지적 수준이 우리 개개인의 지성의 높이와 깊이를 결정하고 우리 나라 전체의 문화, 과학 수준을 결정할 것이므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힘으로 문화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여 나가는 길밖에 없다.

 

세계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우리 문화 수준을 세우게 되면 그 안에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학과 기초 과학, 창조적인 선진 경제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열쇠는 바로 우리 글 한글에 있다.